고려가요 쌍화점과 조선 제례악의 만남, 선율의 계승과 변화

안녕하세요. 씽귤입니다.
고려 시대를 대표하는 민중가요이자 영화 제목으로도 익숙한 '쌍화점'이 어떻게 조선 왕실의 중요한 제례악인 '정명'으로 재탄생했는지, 천현식 학예연구사의 해설을 중심으로 풀어보겠습니다.

'쌍화점' 그 솔직한 이야기

'쌍화점'은 고려 시대에 만들어진 고려가요로, 당시 민중의 솔직한 삶과 사랑을 담고 있습니다. 가사의 내용은 한 아낙네가 몽골인 주인이 운영하는 만둣가게에 갔다가 그 주인과 사랑을 나누는 파격적인 이야기인데요. 소문에 대한 두려움이나 은밀한 관계에 대한 암시가 노골적으로 드러날 정도로 당시의 금기된 관계, 즉 불륜까지도 거침없이 표현했습니다. 이러한 직설적인 가사 덕분에 '쌍화점'은 민간에서 매우 널리 불렸던 대중가요였습니다.

고려가요 <쌍화점> 가사 (일부, 현대어 풀이 포함)

만두집에 만두 사러 갔더니만
회회아비 내 손목을 쥐었어요
이 소문이 가게 밖에 나며 들며 하면
다로러거디러 조그마한 새끼 광대 네 말이라 하리라
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로거디러 다로러
그 잠자리에 나도 자러 가리라
위 위 다로러 거디러 다로러
그 잔 데 같이 답답한 곳 없다

  • “회회아비”: 중앙아시아 계통의 사람을 뜻하며, 여기서는 몽골인 만두가게 주인을 의미

  • “손목을 쥐었다”: 이 구절은 은밀한 관계를 암시

  • “조그마한 새끼 광대 네 말이라 하리라”: 소문이 퍼져도 가볍게 넘길 수 있는 핑계를 염두에 둔 표현

  • “그 잔 데 같이 답답한 곳 없다”: 몰래 함께한 장소가 답답하게 느껴질 정도로 불안하거나 숨 막히는 상황임을 암시

영화 '쌍화점'과의 미묘한 관계

2008년에 개봉했던 영화 <쌍화점>을 기억하시나요? 영화는 고려가요 '쌍화점'과 직접적인 이야기나 설정의 관련성은 없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다루는 인간 내면의 금기와 욕망이라는 키워드는 고려가요 '쌍화점'의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영화 제목 역시 고려가요가 가진 상징성을 차용한 것이죠. 실제 줄거리에는 고려가요 '쌍화점'의 내용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조선 왕실에서 발견된 '쌍화점'의 흔적

민간에서 뜨거운 인기를 누리던 '쌍화점'은 남녀의 정사와 불륜을 다루었기에 그대로 조선 왕실의 제례악, 특히 회례에서는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쌍화점'의 선율은 왕실 음악인 '정명'에 편곡되어 계승되었습니다.

'정명'은 태종의 비인 원경왕후가 정치적 난국에서 태종을 도와 정국을 안정시켰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쌍화점'의 기존 가사 대신 왕실의 위엄에 어울리는 새로운 가사로 재탄생한 것이죠. 이처럼 민간의 멜로디가 궁중음악으로 변형되어 살아남은 것은 매우 드물고도 중요한 문화적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민간 선율이 궁중 음악으로 변모하는 이유

궁중 제례음악에서 민간의 선율을 차용하고 가사를 궁중에 맞게 개작하는 전통은 비단 조선 시대에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중국의 시경, 서양의 그레고리안 성가 등 세계적으로 흔히 볼 수 있는 방식인데, 여기에는 몇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 빠른 확산성: 민중의 삶과 밀접한 음악을 바탕으로 하면 전국적으로 빠르고 널리 확산

  • 친숙함: 민간 선율은 이미 많은 사람에게 익숙하기 때문에 여러 계층이 자연스럽게 수용

  • 공적 의미와 위엄 부여: 궁중의식에 맞는 가사로 바꿈으로 본래의 선율에 공적인 의미와 위엄 부여

요컨대, 종묘제례악 중 '정명'은 '쌍화점'의 선율에서 출발하며, 궁중 제례음악과 민간가요가 서로 연결되는 살아있는 문화적 흐름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쌍화점'은 한편으로는 민간의 솔직한 삶과 사랑을 대변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궁중 음악으로 변화되어 조선 왕실 문화에까지 영향을 남긴 매우 중요한 가요입니다. 하나의 곡이 시대와 배경을 넘어 어떻게 변화하고 재해석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흥미로운 예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