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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현과 요성, 그 오묘한 떨림의 세계
농현은 가야금, 거문고와 같이 줄을 가진 악기에서 연주자의 손끝으로 줄을 '농(弄)한다' 즉, 다루어 만들어내는 섬세한 떨림을 의미합니다. 마치 겨울바람에 실려 온 어린 매화잎이 가늘게 흔들리듯, 현 위에서 펼쳐지는 미세한 진동은 단순한 음을 넘어선 생명력을 부여합니다. 이와 동일한 개념이 관악기와 성악에서는 요성이라는 이름으로 불립니다. 줄을 튕기거나 숨을 불어넣고, 목소리를 흔들어 기교를 더한 음은 울림통과 몸을 통해 감미롭게 퍼져나가며 듣는 이의 마음을 깊이 울립니다.
국악의 '바이브레이션', 단순한 기교를 넘어선 표현
흔히 서양 음악의 바이브레이션과 비견되는 농현과 요성은, 사실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어르신들의 시조 창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정겹고 멋스러운 떨림이 바로 이 요성의 대표적인 예시라 할 수 있습니다. '청산(靑山)'이라는 단어를 한 음 한 음 정성스럽게 흔들어 표현할 때, 그 속에는 단순한 음의 변화를 넘어선 각자의 감정과 삶의 색깔이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 이처럼 농현과 요성은 단순한 음향적 장식에 그치지 않고, 연주자 혹은 가창자의 내면세계를 음악적으로 드러내는 가장 직접적이고 강력한 방식입니다.
'마음 가는 대로'가 아닌 '절제된 미학'
그렇다면 과연 마음이 이끄는 대로 소리를 떨면 될까요? 우리 선조들은 결코 음을 질서 없이 내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1620년, 이득윤 선생이 집필한 거문고 악보 『현금동문유기(玄琴同文有機)』에는 농현의 시작과 끝에 대한 명료한 가르침이 담겨 있습니다.
"처음은 부드럽고 느리게 시작하고, 끝은 빠르게 사라지듯 마무리해야 하며, 그 모습은 마치 범나비가 나는 형상과 같다."
이 구절은 농현이 단순히 음을 떠는 행위를 넘어, 섬세하고 조화로운 흐름 속에서 비로소 완성되는 예술임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즉흥적인 듯 보이지만, 그 안에는 철저한 미학과 절제가 숨 쉬고 있는 것입니다.
다채로운 기법 속 깊어지는 감성의 결
농현과 요성은 단순히 한 가지 떨림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음을 아래로 끌어내리는 퇴성(退聲), 위로 밀어올리는 추성(推聲)과 같이 다양한 표현 기법이 존재하며, 이는 같은 음이라도 무궁무진한 감성의 결을 입힐 수 있게 합니다.
농현과 요성은 얼핏 정해진 답이 없는 자유로운 감성 표현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세심한 절제와 끊임없는 훈련을 요구하는 고도의 기술입니다. 마음을 담아 표현하되, 국악이 지닌 고유의 품격과 격조를 지켜내는 것, 이것이 바로 농현과 요성이 추구하는 진정한 예술적 가치라 할 수 있습니다.
국악의 한 음, 한 떨림 속에 담긴 전통의 숨결과 깊은 감정을 귀 기울여 들어보세요. 그 속에는 우리 음악의 무한한 깊이와, 시대를 초월하여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고스란히 담겨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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