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도 연예인이 있었다?! 민간 예술의 명맥을 이은 '재인청' 이야기

안녕하세요. 씽귤입니다.
"조선시대에도 연예인이 있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네, 있었습니다!"입니다. 지금처럼 방송에 나오는 '아이돌'이나 '배우'의 모습은 아니었지만, 당시 대중들의 박수와 환호를 먹고 살던 예술인들이 분명 존재했습니다. 국립국악원 국악연구실 박희정 연구원님의 설명을 바탕으로, 조선시대 연예인의 세계와 그들의 활동을 지탱했던 민간 예술인 협회 '재인청'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조선시대의 '연예인'을 아시나요?

조선시대 연예인이라 하면 크게 재인(才人), 무부(巫夫), 광대(廣大) 세 부류를 꼽을 수 있습니다.

  • 재인(才人): 주로 굿판에서 굿 음악을 연주하거나, 곡예(물구나무서기, 줄넘기 등)를 펼치던 예인들을 지칭했습니다.

  • 무부(巫夫): 무당의 남편으로, 무속 활동을 보조하고 굿판에서 음악을 연주하는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 광대(廣大): 앞서 언급된 재인과 무부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익숙한 판소리 명창들도 모두 광대의 범주에 속했습니다. 이들은 당대의 스타로, 전국을 유랑하며 자신의 기예를 선보였습니다.

이들은 팍팍한 삶 속에서 대중에게 웃음과 감동을 선사하며, 오늘날의 연예인과 같은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민간 예술인 협회 '재인청'의 역할

그렇다면 조선시대 민간 예술인들은 어떻게 조직적으로 활동했을까요? 그 중심에는 바로 재인청(才人廳)이라는 기관이 있었습니다. 오늘날의 '민간 예술인 협회'와 같다고 볼 수 있죠.

재인청은 하나의 이름으로만 불린 것이 아니라 여러 명칭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주로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삼 개 지역에 설치되어 민간 예술인들의 활동을 지원하고 관리했습니다.

재인청,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재인청의 활동 시기는 문헌을 통해 꽤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 1872년 '팔도재인등장(八道才人等狀)'이라는 문서에는 우리가 잘 아는 염계달, 송흥록 같은 판소리 명창들의 이름이 거론되어 있습니다. 이는 재인청이 조선 후기까지 활발하게 기능했음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 더 거슬러 올라가 1618년(광해군 10년) 10월 16일의 일기에는 '도산주(都山主)'라는 호칭이 등장합니다. 도산주는 재인청의 총수인 '대박' 아래 있는 책임자로, 각 지역 재인청의 총수를 지도하고 감독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는 1618년 이전부터 재인청이 조직적으로 활동했음을 시사합니다.

  • 또한, '경기도창재도청안(京畿道唱才都廳案)'에는 1784년부터 1920년까지 재인청의 활동 기록이 남아 있어, 오랜 기간 동안 민간 예술인 협회로서의 역할을 수행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기록들을 통해 재인청은 적어도 17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약 300여 년간 민간 예술의 구심점 역할을 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재인청은 어떤 일을 했을까?

재인청은 단순히 예술가들의 모임이 아니었습니다. 그 역할은 매우 다양하고 중요했습니다.

  • 행정적 업무 처리: 재인들은 물론, 모든 민간 예술인들의 행정적인 일처리를 담당했습니다.

  • 기량 연마 지원: 굿을 행하는 무당의 자녀들에게 악기와 춤 등의 기량을 연마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지원했습니다. 이는 예술적인 명맥을 잇는 중요한 과정이었습니다.

  • 활동 계획 및 방향 설정: 무부(巫夫)들이 집단으로 모여 집합 장소로 재인청을 활용하여 예술 활동을 계획하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논의하는 등, 예술 단체로서의 기능을 수행했습니다.

무엇보다 재인청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개화기나 일제강점기 같은 격동의 시기에도 민간 예술의 명맥을 보존하고 전승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입니다. 관에서 운영하는 예술은 예산 지원으로 단절이나 왜곡이 적었지만, 민간 예술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인청이라는 조직이 있었기에, 수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민간 예술이 끊이지 않고 현재까지 전승될 수 있는 귀중한 기반이 되었습니다.

재인청은 단순히 과거의 한 기관이 아니라, 민간 예술의 힘과 지속 가능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역사적 증거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다양한 전통 예술을 접할 수 있는 것도 어쩌면 이러한 숨겨진 민간 예술인들의 노력과 재인청과 같은 조직의 헌신 덕분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