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춤, 어떻게 기록했을까?

음악에는 악보가 있듯이, 춤에도 ‘무보(舞譜)’라는 기록 방식이 있습니다.
하지만 춤은 음악보다 훨씬 복잡하게 기록해야 합니다. 음악은 음의 높낮이와 길이만 알면 재현이 가능하지만, 춤은 팔·다리·몸통·고개·시선 등 신체 각 부위의 움직임뿐 아니라, 공간 이동 경로, 반주 음악까지 함께 기록해야 비로소 온전하게 재현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요소를 기호로 완벽하게 기록할 수 있는 체계는 20세기 이후에야 완성되었지만, 조선시대에도 문자나 그림을 활용한 제한적인 춤 기록이 존재했습니다.

문자로 기록된 무보 – ‘정재무도홀기’

조선 후기 궁중연향에서 추었던 춤 ‘정재’를 기록한 『정재무도홀기』는 대표적인 문자 무보입니다.
여기에는 춤의 진행 순서가 한문으로 간단히 기록되어 있는데, 예를 들어

  • 무진: 춤을 추며 나아감

  • 일전: 한 바퀴 돎

  • 이수고저: 팔을 높였다 낮춤

같은 식으로 표기됩니다.

예를 들어 ‘봉래의’라는 춤의 초반부 기록을 풀어보면,

“천년만세지곡을 연주한다. 박을 치면 죽간자를 든 두 사람이 앞으로 나아간다. 음악이 멈추면 구호(노래)를 한다.”

이처럼 조선 전기 『고려사』나 『악학궤범』에서도 비슷한 방식이 사용되었기에, 조선 초·후기를 통틀어 문자 무보가 중요한 기록 방식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림으로 기록된 무보 – ‘시용무보’

조선 후기 종묘제례에서 추었던 일무(佾舞)를 기록한 『시용무보』는 독특하게도 정간보(우리 전통 악보)의 네모 칸 안에 동작 그림을 넣었습니다. 이를 통해 음악 진행에 따라 춤 동작이 어떻게 변하는지 알 수 있었지만, 정지된 포즈만 표현되는 한계는 있었습니다.

문학적 표현이 들어간 춤 – 춘앵전

효명세자가 어머니를 위해 지은 춤 ‘춘앵전’은 다른 춤 기록과 달리 문학적인 묘사가 더해진 것이 특징입니다. 『정재무도홀기』에 기록된 표현을 보면,

  • 낙화유수: 소매를 뿌리며 좌우로 돌되, 꽃이 흩날리고 물이 흐르는 듯이 춤출 것

  • 비금사: 앞뒤로 움직이되, 금빛 모래가 날리듯이 할 것

  • 과교선: 좌우로 크게 한 바퀴 돌되, 신선이 다리를 건너듯이 할 것

이런 표현을 읽으면, 단순한 동작을 넘어선 조선시대 궁중 춤의 품격과 미학이 전해집니다.

조선시대 무보는 지금처럼 완벽한 동작 기록은 아니었지만, 그 시대의 예술 감각과 궁중 문화의 품격을 고스란히 담아냈습니다. 문자, 그림, 그리고 문학적 표현까지—이것이 바로 조선의 춤이 우리에게 남긴 우아한 발자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