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문화적으로도 큰 변화를 맞이했습니다. 특히 음악은 고구려와 백제의 다양한 요소를 흡수하며 더욱 풍성해졌죠. 신라 고유의 가야금뿐만 아니라 거문고, 비파, 대금 등 여러 악기가 사용되었고, 중국과 중앙아시아, 서남아시아 등 다양한 지역의 음악 문화가 유입되면서 전통 음악과 외래 음악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독특한 시대를 열었습니다.
거문고의 대가, 옥보고
통일 신라 시대 거문고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인물로 옥보고가 있습니다. 귀족 출신이었던 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 지리산 운상원에 들어가 50년 동안 거문고 기법을 수련했습니다. 옥보고는 <상원곡>, <중원곡>, <노인곡> 등 30여 곡의 새로운 가락을 만들어 거문고 음악의 중요한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나라를 구한 피리, 만파식적(萬波息笛)
만파식적은 신라 신문왕 시대에 전해 내려오는 신비로운 피리입니다. 죽어서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는 문무왕의 유언처럼, 동해 바다에 나타난 섬과 대나무에서 용이 나타나 "이 대나무로 악기를 만들면 나라에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모든 재앙이 사라질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신문왕은 이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었고, 실제로 가뭄이나 왜적의 침입 같은 위기 상황에서 이 피리를 불자 비가 내리고 적군이 물러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은 이 피리를 '모든 파도를 잠재우는 피리'라는 뜻의 만파식적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만파식적이 오늘날의 대금의 시초라고 알려져 있으며, 대금은 크기에 따라 대금, 중금, 소금으로 나뉩니다.
통일 신라 시대의 음악은 세 가지 현악기(거문고, 가야금, 비파)와 세 가지 관악기(대금, 중금, 소금)를 중심으로 발전했습니다. 이를 삼현삼죽(三絃三竹)이라 부르며, 이 여섯 가지 악기를 기반으로 다양한 우리 악기와 외래 악기가 함께 연주되었습니다.
춤과 노래로 나쁜 기운을 물리친 처용무
신라 헌강왕 시대에 외국인 처용의 이야기는 당시 이국적인 문화가 얼마나 널리 퍼졌는지 보여줍니다. 왕의 총애를 받았던 처용은 집에 돌아와 역신이 아내와 함께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처용은 화를 내는 대신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었고, 그의 넓은 마음에 감동한 역신은 처용이 있는 곳에는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약속합니다.
이후 사람들은 나쁜 기운을 물리치기 위해 처용의 얼굴을 그려 붙였고, 그의 이야기를 담은 처용가와 처용무가 유행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궁중에서는 새해를 맞이할 때 재앙을 물리치고 좋은 기운을 불러오기 위해 처용무를 추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불교 음악의 정수, 범패(梵唄)
통일 신라는 불교가 크게 번성했던 시대였습니다. 자연스럽게 불교 음악인 범패도 크게 발전했죠. 범패는 본래 불교의 발상지인 인도에서 부처님께 예불을 올릴 때 부르던 노래가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입니다. 우리나라 고유의 음악과 섞이면서 독특한 형식으로 발전했으며, 오늘날 사찰에서도 스님들이 범패를 부르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진감선사는 통일 신라 시대에 범패를 가장 잘 불렀던 스님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나라에서 불교를 공부하고 돌아온 그는 높은 깨달음과 뛰어난 범패 실력으로 많은 제자를 길러냈습니다.
원효와 설총, 음악으로 불교를 전파하다
통일 신라 시대의 위대한 사상가 원효 스님은 음악을 통해 불교의 가르침을 널리 알렸습니다. 그는 깨달음을 얻은 후 광대들이 사용하는 박에 '무애'라는 이름을 붙이고, 박을 두드리며 무애가를 불렀습니다.
무애가는 기존의 노랫가락에 불교의 진리를 담은 노랫말을 붙여 만든 노래입니다. 이를 통해 글을 모르는 일반 백성들도 쉽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할 수 있었죠. 원효는 노래와 춤으로 불교의 진리를 전파하며 대중과 소통했던 인물이었습니다.
원효의 아들인 설총 또한 신라의 유명한 학자였습니다. 그는 중국의 경전을 우리말로 쉽게 풀이하는 방법을 고안했습니다. 한문 구절에 우리말의 조사와 어미를 붙여 읽는 표기법을 만든 것인데, 이는 향찰이나 이두와 같은 표기법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통일 신라 시대의 음악은 다양한 외래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우리 고유의 정신과 결합하며 찬란하게 꽃을 피웠습니다. 전통과 외래의 조화가 만들어낸 통일 신라의 음악은 오늘날 우리의 음악적 뿌리가 되었습니다.